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10.24 시민혁명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의의 === 10.24 시민혁명이 남긴 가장 본질적인 유산은 루이나의 정치 권력자들에게 "정권은 언제든 시민 앞에서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계심을 뿌리내리게 했다는 점이다. 이후 루이나의 정치 엘리트와 군 수뇌부는 "시민들이 다시 무장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이는 실질적인 억제력으로 작용했다. 혁명은 제도에도 흔적을 남겼다. 계엄 권한의 헌법적 제한과 고위공직자 탄핵 제도가 제4공화국 헌법에 들어갔다. 다만 군의 정치 개입을 명문으로 금지하는 조항은 1989년 제6공화국 헌법에 가서야 들어갔다. 혁명이 만든 탄핵·파면 제도가 9년 뒤 처음으로 쓰인 대상이 혁명의 과실을 거둔 베인브리지 자신이었다는 점은 자주 지적되는 역설이다. 혁명은 [[검은 10년]]의 종언으로도 받아들여진다. 무장조직들은 군정에 맞선다는 명분을 잃었고, 청북전쟁 제대군인과 반전 학생이 결성한 [[10월 전선]]은 1980년 12월 스스로 해산했다. 검은 10년의 무장조직 가운데 자진 해산한 유일한 사례였다. 오늘날까지도 루이나 정치권에서 자주 회자되는 문장 "광장은 총을 들었던 적이 있다"는 이 혁명의 본질을 요약하는 표현으로 남아 있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